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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 한옥펜션/체험안내 > 체험소개 > 국궁(활쏘기)

체험소개

 

◆ 국궁체험 

   

 1.인원:최소 5명이상 

 

 2.체험료(1인당)3000원 

  

 3. 체험시기: 년중가능  

 

 4. 예약:사전예약 

 

※ 활쏘기의 유래 

  

우리의 옛 전통 놀이 중에 단연 우리민족을 대표하는 놀이로  

활쏘기를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전통의 활쏘기는 이제 민속전통의 역사속으로 점차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우리 전통 활쏘기가 우리 역사에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뒤돌아  

보고 왜 지켜나가야 하는지 생각해 볼 때다. 

활쏘기는 옛 무인들만 익혔던 전투 기술로 생각하기 쉬운데 우리네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 민족이 얼마나 활과 가까이 지냈는지를 알 수 있다.

우리 전통 활쏘기의 유래는  선사시대까지 올라간다.  

전국의 선사유적에서는 마제석촉이라 하여 화살촉이 곳곳에서 출토되었다.  

초기 궁시(弓矢:활과 화살)는 구석기시대말 근동아시아지방 민족에 의해  

사용되었고 신석기시대에  사냥을 위해 빠르게 보급되었으며 부족간의 무기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고조선의 단궁과 고구려의  맥궁은 중국에 까지 널리 알려졌다. 

중국에서는 우리민족을 "동이(東夷)"라고 불렀는데, 여기서 "夷" 자는  

대궁(大弓)을 뜻하는 말로  

큰 활을 잘쏘는 민족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중국의 위지 동이전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활쏘는 재주가 뛰어나며, 주위사람들이 이들을 두려워하여  

쉽게 굴복시키지 못했다." 

중국 송나라때 편찬된 신당서(新唐書:당나라의 正史)에는 "고구려사람들은  

어려서부터 글읽기와  

활쏘기를 병행시켜 국민 전체에 사풍(射風)이 보급되었다"고 전하고 있으며  

삼국사기에는 명궁이던  

고이왕이 하루 40마리의 사슴과 화살 하나로 두마리의 기러기를 맞히는 솜씨를  

지니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또한 백제 비류왕 17년에 궁궐에 사대(射臺)를 만들어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백성들과 왕이 지켜보는 가운데  

활쏘기가 행해졌다고 전한다. 중국문헌인 후주서(後周書)에는 백제에서는  

활쏘기가 널리 퍼져 향(鄕) 단위에서도  

활쏘기가 보편화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